어려움을 지나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을 구하는 다윗의 아름다운 시이다. 부당한 환경을 탓하거나 원망하는 대신 주님의 길을 가르쳐 달라고, 그래서 그 길을 걸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다윗의 아름다운 모습을 본다. 어쩌면 이것이 나의 삶에서도 정답인 것 같다. 누구에게 배우느냐가 무엇을 배우는가 보다 더 중요하다. 다윗은 하나님께 배우기를 선택한다. 박수와 환호를 보내고 싶은 장면이다. 나에게도 이런 기회가 살아있다. 성령님이 늘 함께 하시고 가르쳐 주신다고 예수님께서 약속했기...
이스라엘의 과거를 회상하며 현재의 어려움을 주께 아뢰고, 회복될 미래를 기대하며 노래하는 고라 자손의 아름다운 시이다. 하나님이 하신일을 기억하는 것은 그 분의 자녀에게 말할 수 없는 힘과 소망을 준다. 상황이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을 때에도 올바른 시각을 놓치지 않게 한다. 지난 날들을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며 강력한 생각의 도구가 된다. 과거를 얼마나 자주 돌아보는지 나 자신에게 질문해 보았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바라보는 시간을 적어도...
하나님께 대적을 물리쳐 달라는 아삽의 기도이며 노래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매를 맞더라도 치유와 회복을 이루지만, 그 분을 미워하고 그의 백성을 공격하는 자들은 노여움의 심판을 피하지 못한다. 사자의 새끼를 건드리면 큰일 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님과 그의 백성을 멸시하는 적들이 있다. 동맹을 맺고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타겟하는 사람도, 조직이나 권력도 있는 것 같다. 그 중에도 누가 택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인지 알 수 없기에 여전히 사랑하고 복음을...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나를 사랑하느냐고 반복하여 질문하신다. 누군가 같은 질문을 세번이나 반복할 때에는, 듣는 이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너무나 중요한 핵심을 상대의 머리와 가슴속에 분명하게 새겨주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조반 후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아마 밥 먹을 때 얘기 했다면, 베드로는 생선은 고사하고 물도 삼키지 못했을 것이다. 세번의 동일한 질문과 베드로의 대답도 똑 같았다. “아시잖아요,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 그 외에 무슨...
부활하신 예수님은 울고있는 마리아와 두려움에 숨어있는 제자들에게 찾아오신다. 안식 후 첫날 새벽에 무덤 밖에 서서 울고있는 마리아의 심정을 상상해본다. 견디기 힘든 절망과 허무함이 아니었을까? 그녀의 이름을 불러줄 때까지, 마리아는 바로 앞에 서 있는 예수님이 누구인지도 알아보지 못했다. 나에게 찾아와 내이름을 불러주셨을 때 까지, 나는 어디서 왔고 어느 곳으로 가는지, 다가올 심판의 육중함도 모른채, 멸망의 종착역을 향해 가고있는 존재였다. 영원은 고사하고 잠시 지나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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