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자신이 우리를 위해 생명을 내어주는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신다.
유대인 앞에서 잘난척 하기위해 말헀다고 생각하면 완전히 과녁을 벗어난 것이다. 그 분은 우리를 위해 죽기 위하여 오셨고 그것을 알려주려고 말했다.
어느 목자가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겠는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람의 목숨이 양보다 중요한 것이 당연하듯, 창조주의 목숨이 피조물의 것보다 감히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조차 없이 무한히 위대하다. 그런데, 왜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신 것일까? 솔직히, 난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 고개숙이고, 엎드러지고, 그 사랑 앞에 울 수밖에 없다.
하늘의 천사라도 말렸을 일이다. 아마 나라도 붙잡고 가지 말라고 애원했을지 모른다.
무엇이든 말로는 쉽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다르다.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셨던 걸까? 그 분을 만날때 까지는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로 남을 것이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린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 그리고 하신 일이다.
나는 예수님을 위해 오늘 무엇을 버리고, 또 무엇을 그 분께 드릴 수 있을까?
요한복음 10:11-2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유대인 중에 다시 분쟁이 일어나니
그 중에 많은 사람이 말하되 그가 귀신 들려 미쳤거늘 어찌하여 그 말을 듣느냐 하며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말은 귀신 들린 자의 말이 아니라 귀신이 맹인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느냐 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