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남겨두고 떠나야 할 제자들에게 세상과 충돌할 것임을 알려주시며, 무엇이든 그 분의 이름으로 구하면 아버지께서 들어주신다는 엄청난 약속을 하신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 그리고 오늘을 사는 우리의 가치와 목적은 세상의 것과 충돌한다. 때론 조화를 이루는 것 같지만, 궁극적으로는 가야하는 방향과 목적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매일 목적을 위해 기쁨으로 살아가지만, 떠나야 할 시간이 오고있기에 세상의 상대적 가치에 너무 마음 둘 필요가 없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에서 주신 보너스가 정말 크다. 자신이 서명한 공수표와 같은 약속을 제자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다. 무엇이든 (여기서는 어떤 제한이 없는 듯 하다), 예수님 이름으로만 구하면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실로 거대한 약속이다. 이쯤되면 억만장자 아빠를 둔 사람이 부러우면 안 되는 거다. 감히 비교도 안 되는 수준이니까.
그런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에서 막힌다. 나의 야망과 욕심을 채우기 위해 구하는 것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일테니 하나님이 거절할 수 있다. 더우기 예수님이름으로 구할 것이 별로 없어보인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엄청 많다. 자녀들의 신앙과 가치관, 그들의 앞날과 사명,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한 나 자신, 그리고 주님을 모르는 이웃… 따져보면, 내 욕심으로 채울 수 있는 것 보다 훨씬 값지고 좋은 것들이다. 그리고 들어주신다는 약속이 수십억 권의 성경에 증거물로 나와있다.
“장난감을 가장 많이 갖고 죽는 놈이 이긴다 (He who dies with the most toys wins)” 라는 오래전에 본 범퍼 스티커가 생각난다. 세상에서 가질 수 있는 반짝이고 눈 부신 것들… 떠날 때 생각해보면 장난감 수준밖에 안 된다.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그 분의 손길에 순종하는, 예수님 이름으로 싸인된 공수표를 너무나 많이 써서 잘했다고 칭찬받는 사람이고 싶다. 언젠가 하나님이 “잘 했구나, 착하고 충성된 종아” 라고 해 주시는 한 마디가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어떤 장난감보다 내겐 더 값진 것임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니
제자 중에서 서로 말하되 우리에게 말씀하신 바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며 또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하신 것이 무슨 말씀이냐 하고
또 말하되 조금 있으면이라 하신 말씀이 무슨 말씀이냐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거늘
예수께서 그 묻고자 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내 말이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므로 서로 문의하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이것을 비유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는 비유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