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반복되는 우상숭배를 음행과 같다고 책망하신다.
우상을 섬기는 것을 부부 사이에 음행처럼 여기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나의 우상은 무엇인가? 그분을 기쁘게 하는 것보다 더 많은 관심과 시간, 정성을 들이는 것들이 나에겐 많다.
하나님 한 분만을 사랑하겠다고 늘 다짐해도, 잘못했다고 입술로 회개해도 완전히 돌아서지 못하는 자신을 본다. 나의 회개는 미안한 마음으로 드리는 일상적 의식과 같이 돼버린 것 같다. “어차피 육신에 사는 동안은 거룩해지는 것은 불가능해.”라고 스스로 합리화한다. 문제는 나의 마음이다.
마음 없는 회개를 반복하니까 달라진 것도 별로 없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질책하는 것이 나에게 하시는 말씀인 줄 알면서도 내 욕심과 이기심, 얕은 이익과 즐거움을 슬그머니 다시 주워 담는다. 버리지 않는 회개이니 삶이 달라지지 않는다. 내 삶에서 반복되는 이스라엘의 음행이다.
그런데, 솔직히 답이 없다. 내 의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 많은 실패의 반복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 마음을 바꿔 주시길 기도한다. 진심으로 드리는 기도가 쌓이면 나의 마음도 바꿔 주시지 않을까? 다메섹으로 가는 혈기 등등한 사울을 돌이키신 예수님이 나도 그렇게 만져주시면 좋겠다.
한 번에 안 되는 병이라면 매일 조금씩이라도 치료해 주시면 좋겠다. 고쳐 달라고 다가온 병자를 한번도 거절한 적이 없으신 좋으신 예수님이심을 성경을 통해 알게하셨다. 오늘 한 걸음 후퇴하면 내일은 두 걸음 전진하도록. 늘 넘어져도, 뒤돌아보면 주님께 훨씬 더 가까이 와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도록….
그들이 말하기를 가령 사람이 그의 아내를 버리므로 그가 그에게서 떠나 타인의 아내가 된다 하자 남편이 그를 다시 받겠느냐 그리하면 그 땅이 크게 더러워지지 아니하겠느냐 하느니라 네가 많은 무리와 행음하고서도 내게로 돌아오려느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네 눈을 들어 헐벗은 산을 보라 네가 행음하지 아니한 곳이 어디 있느냐 네가 길 가에 앉아 사람들을 기다린 것이 광야에 있는 아라바 사람 같아서 음란과 행악으로 이 땅을 더럽혔도다
그러므로 단비가 그쳤고 늦은 비가 없어졌느니라 그럴지라도 네가 창녀의 낯을 가졌으므로 수치를 알지 못하느니라
네가 이제부터는 내게 부르짖기를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는 나의 청년 시절의 보호자이시오니
노여움을 한없이 계속하시겠으며 끝까지 품으시겠나이까 하지 아니하겠느냐 보라 네가 이같이 말하여도 악을 행하여 네 욕심을 이루었느니라 하시니라